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산울림의 데뷔는 파격적인데, 이는 전대 뮤지션들과의 음악적인 연결고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영미권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은 흔적도 그다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고, 특히 1~3집에서 보여준 퍼지톤 기타와 오르간의 독특한 어울림과 그 안에서 형성되어 나오는 그루브는 이전에도 없었지만 이후에도 찾기 어렵다. 특히 70년대 말 암울했던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대중 감성의 주조가 ‘체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 발표한 1집의 수록곡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같은 노래는 기묘하기까지 하다. 김창완의 툭툭 내뱉는 심드렁한 보컬이 간결한 피아노 라인과 어울리면서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스타일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당시 사회문화적인 상황으로 보건대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작법이었다. 이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서양 음악은 기본적으로 신선하지 않다. 뭔가 내게 자극을 주지 못한다. 아마 묘한 분위기에서 기타 연주를 듣는다든지, 아라비아의 어느 거리에서 묘령의 아가씨가 지나갈 때 코브라를 춤추게 하는 피리 소리에 반할 수는 있다”는 김창완의 음악관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 산울림의 노래들은 다음해에 발표된 2집에서 음악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1~3집에 담긴 노래들은 김창완이 대학에 입학한 71년께부터 만든 노래들이기 때문에 창작에서 완숙해졌다는 의미보다는 1집 녹음 경험을 통해 편곡과 세션이 진일보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본 앨범은 이전 1집의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그들이 3집만큼은 아니지만 좀더 과감한 실험성을 선보이면서도 연주에서 밀도를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도 앨범의 퀄리티를 극대화시킨 작품이 되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안개 속에 핀 꽃’ ‘이 기쁨’과 같은 노래들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감성적인 연주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고, 김창완의 멜로디 중심의 기타 솔로는 탁월하다. 그는 테크닉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지만 솔로라인 진행만큼은 당대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목할 점은 김창완의 가사 쓰기인데, 그의 작법은 이전 작사가들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의 가사들은 매우 개인적이고 관조적이며 때로는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뜨겁거나 애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드라이한 편인데도 매력적이라는 점이 남다르다. ‘어느날 피었네’에서 ‘어느 비오는 날 꽃을 심었어요/ 무슨 꽃이 필까 기다렸었어요/(중략)/ 밤에도 나가서 보곤 했지요/ 비오는 날이면 지켜 섰었어요’라는 가사는 노래를 직접 듣기 전에는 노래라고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일기를 보는 느낌이다. 그의 말대로 작법에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고, 대중음악 창작에서의 지평을 넓혔다고 할 수 있다. “작곡할 때도 생각했던 것은, 사랑이 떠나가서 슬픈 사람이라면 눈물이 먼저 나오지 어떻게 ‘내 사랑 떠나갔네’하고 노래를 부를까, 라는 점이다”(김창완)라는 사고방식의 가사 쓰기는 90년대 들어와서 형성된 ‘개인의 시대’ 작법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음악적인 분석을 넘어서 아직까지도 산울림을 얘기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노래가 매우 뛰어나서인데, 그 중심에는 산울림의 2집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명작인 1~3집을 넘어서는 후속작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그래서 산울림 초기는 전설 그 자체이다.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gaseum.co.kr〉
산울림의 데뷔앨범을 섹스 피스톨스의 그것과 연관시키는 평자들은 흔히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하곤 한다. 두 앨범이 같은 해에 발매되었으며, 아마추어리즘을 바탕으로 주류 음악계를 뒤흔들어놓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같은 외적 조건의 유사성만으로는 이 앨범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측면을 왜곡시킬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이 앨범은, 정치적 이념은 말할 것도 없고, 미학적 이론으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산울림의 음악은 이데올로기 따위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아예 무관심하다. 특히, 이 데뷔작은 무엇보다 즐거움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록 앨범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몇 년 전의 인터뷰에서 김창완은 자신의 작품들 가운데 동요앨범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서 함양이라는 음악의 원초적 기능에만 충실한 것이 동요다. 거기에는 전복적 사고나 이념적 가치와 같은 ‘불순물’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산울림의 데뷔 앨범은 록음악이 동요의 단순한 직선성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이다.

예술가적 자의식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와 순진한 열정이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을 만들어낸 극히 보기 드문 사례였던 것이다. 수록곡들이 앨범을 제작하기 수년 전에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는 사실은 그 증거 가운데 하나다. 그들의 벼락 같은 등장이 대마초 파동으로 쑥대밭이 된 음악계의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는 시대적 조건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굳이 서양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60년대 초반 미국의 개러지 록과 함께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비틀스의 정제된 록 사운드가 세상을 뒤덮기 직전,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연주된 로큰롤의 거친 순박함이 그것이다. 그 분방한 자유로움 속에서 혁신이 탄생한 것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이 앨범이 가져온 파격 또한 의식적으로 연출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동시대 가요의 통속적 감상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선율로 이루어진 곡들이 상당수임에도 이 앨범이 그들과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이유도 거기 있다. 보다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2집이 정형화의 대가를 치른 반면, 이 앨범의 발랄한 도발은 기존의 무엇에도 빚진 게 없는 만큼 완전히 신선했고 여전히 신선하다.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서 탈피한 노랫말(김창완은 1982년의 8집에 이르러서야 산울림의 노래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말했다), 동요를 반주하는 듯 또박거리는 오르간과 심하게 일그러진 퍼즈 톤 기타의 극적인 사운드 대비, 묵묵하게 전진하는 드럼과 굽이치며 꿈틀대는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그루브까지 이 앨범의 내용물은 그 전과 후를 통틀어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이다. 그래서, 당대의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던 ‘아니 벌써’도 그렇지만, ‘문 좀 열어줘’의 인트로와 노랫말은 오늘 발표된 신곡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공시성의 생생함으로 다가온다. 민요를 모티브로 한 가장 창조적인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청자(아리랑)’, 변형된 론도양식의 리프가 시종일관하는 기이한 사랑노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등도 그 못지않다.

산울림의 데뷔앨범은 구도자적 이미지와 혁명적 메시지로 포장된 록 음악 신화를 해체해버렸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점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 그건 결코 아이러니가 아니다. 오늘의 록 음악이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 모순적 논리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은석|음악평론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