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00대 명반]21위 동물원 ‘동물원’ | ||||
입력: 2007년 11월 08일 09:39:59 | ||||
이들은 동물원이라는 이름 이전에 ‘이대생을 위한 발라드’라는 팀 명을 가질 뻔했다. 이들의 적극적인 지원자였던 산울림의 김창완이 제안한 이 이름은 이대생들에게만 팔아도 1000장은 팔 수 있을 거란 장난스러운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만큼 이들의 시작은 농담 같았고 장난 같았으며 진지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앨범이 1000장 넘게 팔릴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노래는 그저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였으며 좋은 취미 활동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동기들 등등이 모여 결성한 동물원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노래를 모아 한 장의 기념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되는 건 될성부른 많은 수의 나무들이 이 동물원이라는 아마추어 밴드에 모두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창기와 유준열은 이미 이 첫 앨범에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채로 훗날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유리로 만든 배’ ‘새장 속의 친구’ 같은 명곡들을 예고하는 뛰어난 송라이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김광석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모던포크의 거목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고, 기타리스트 이성우 역시 ‘시간이 흐르고 나면…’이라는 본격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을 만들어 내며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비록 녹음 상태는 열악하고 조금 어설픈 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이 지금까지 계속 빛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훌륭한 뮤지션들이 갖고 있는 재능 때문이었다. 앨범에서는 (김창기가 ‘뜨려고’ 작정하고 만든 곡이라는) ‘거리에서’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앨범 안에서 동물원의 색깔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노래는 ‘잊혀지는 것’과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다. 이 노래들은 당시에 유행하던 주류 가요의 문법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포크도 아니고 발라드도 아닌 그냥 동물원의 노래였다. 김창기는 일상생활에서 얻어낸 비범한 노랫말과 덤덤한 보컬로, 유준열은 독특한 소재의 가사들과 리듬의 진행으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며 계속해서 동물원의 음악을 주도해나갔다. 특히 김창기는 ‘잊혀지는 것’과 ‘변해가네’ 등의 노래들을 통해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가사들을 만들어냈고, 이후 동물원과 창고, 그리고 솔로 활동 등을 통해 소심한 남자들의 로망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사가라는 호칭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 앨범의 노래들은 좋은 녹음에 담기지도 못했고, 빼어난 연주가 실려 있지도 않으며, 멤버 대부분의 노래 실력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결코 잘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의 어설픈 노래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았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에 의해 불리고 있다. 과연 좋은 노래란 어떤 노래일까? 그 답은 이 앨범 안에 들어있다.
·결성 : 1988년 ·구성원: 김창기(보컬), 김광석(기타, 보컬), 유준열(기타, 베이스, 보컬), 박경찬(보컬), 박기영(키보드), 이성우(기타) ·주요 활동 -1988년 1집 ‘동물원: 거리에서/변해가네’ -1988년 2집 ‘동물원 두번째 노래모음: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별빛 가득한 밤에’ -1990년 3집 ‘동물원 세번째 노래모음: 시청앞 지하철역에서/길을 걸으며’ -1991년 4집 ‘동물원 네번째 노래모음: 아침이면/옛 정거장’ -1993년 5집 ‘동물원 5-1’ ‘동물원 5-2’ -1995년 6집 ‘동물원 6: 널 사랑하겠어/가을의 노래’ -1997년 7집 ‘동물원 일곱번째: 사랑니/잃어버린 나’ -2001년 8집 ‘동물원 여덟번째 이야기: 冬화’ -2003년 9집 ‘아홉번째 발자국: 단순한 남자, 세상에 내가 태어나 제일 잘한 일’ 〈김학선|웹진 가슴 편집인〉 |
[경향신문] [대중음악 100대 명반]21위 동물원 ‘동물원’
2008. 2. 19.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