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00대 명반]28위 작은거인 ‘작은거인 2집’ | ||||
입력: 2007년 11월 29일 10:10:04 | ||||
‘작은 거인’은 1979년에 처음 열린 ‘대학가요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데뷔한 밴드다. ‘대학가요 경연대회’ 본선 무대는 물론, 당시 캠퍼스 밴드들이 자주 출연하던 MBC의 ‘영 11’이나, KBS의 ‘젊음의 행진’과 같은 프로그램들에서 보여준 김수철의 빠른 손놀림, 또 AC/DC의 앵거스 영(Angus Young)과 척 베리(Chuck Berry)의 걸음걸이에서 착안한 도발적인 스테이지 매너는 해외의 록 음악을 비교적 일찍 섭취한 세대가 보기에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파격’을 음반으로 옮기기에 당시 우리가 가진 기술은 너무나 미약했다.
그에 반해 2년 후 발매된 두 번째 음반의 뒷면에는 두 멤버의 무섭도록 비장한 표정이 흑백사진으로 담겨 있다. 어쩌면 ‘산울림’이나 ‘사랑과 평화’처럼 첫 등장부터 청자들의 허를 찌르며 순식간에 국내 록의 개척자 자리에 등극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첫 번째 음반의 예정된 실패에 대한, 또 그런 저런 이유로 함께했던 음악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나머지 멤버들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보인다. 작은 거인의 두 번째 앨범은 국내 록의 마스터피스 가운데 하나로 손꼽기에 충분한 음반이다. 이전의 음반을 통해 보여준, 록 음악에 취약했던 국내 녹음의 취약점은 일본인 엔지니어 지다가와 마사토의 손을 거쳐 록 본연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타 캠퍼스밴드의 자작곡 넘버들과 마찬가지로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곡 자체의 수준도 외국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격상되었다. 2인조로 축소됐지만 김수철의 베이스, 기타 오버더빙에 의해서 밴드로서의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있으며, 최수일의 드럼 연주 또한 그때까지 보기 힘들었던 전문 록 드러머로서의 역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물 만난 물고기 같은 김수철의 기타 연주는 왜 이 음반을 국내 록의 마스터피스로 꼽느냐에 충분한 해답이 되어준다. 김수철식 ‘국악가요’를 실험대에 올리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별리’를 비롯해서 어느 곡 하나 빼놓을 수 없지만, 공연시 컵을 이용한 슬라이드주법을 선보였던 ‘새야’, 마우스 튜브를 이용한 전주, 또 마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 뒤에 기타를 걸치고 연주했던 ‘알면서도’, 간주부분을 이빨로 연주하던 ‘일곱 색깔 무지개’ 등은 한국 록이 낳은 빛나는 보석이다. 물론 신중현이나 김홍탁과 같은 선구자들 덕택에 국내에 록 음악이 생겨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작은 거인과 같은 밴드가 있었기에 우리의 록 음악은 ‘진보’할 수 있었다. 이후 몇 차례의 멤버 교체 후 작은 거인은 해산하고 김수철은 솔로로, 최수일은 케이블 방송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게 된다.
·결성 : 1979년 ·구성원 : 김수철(보컬, 기타, 베이스) 최수일(드럼) ·주요활동 -1979년 1집 ‘작은 거인의 넋두리: 호랑나비/바람개비’ -1981년 2집 ‘작은 거인: 별리/어쩌면 좋아’ 〈송명하|월간 핫뮤직 수석기자〉 |
작은거인
- [경향신문] [대중음악 100대 명반]28위 작은거인 ‘작은거인 2집’ 2008.02.19
[경향신문] [대중음악 100대 명반]28위 작은거인 ‘작은거인 2집’
2008. 2. 19.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