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00대 명반]30위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Ⅱ’ | ||||
입력: 2007년 12월 06일 09:50:44 | ||||
우리가 서태지를 설명하기 위해 언어의 그물망을 탁 던지면,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재빨리 피해버린다. 다시 한 번 던지면서 그가 걸려들기를 희망해보지만 어느새 그는 저 너머로 건너가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시종일관 무차별 변신으로 일관해온 대중음악의 순례자. 이것이 우리가 서태지에 대해 갖고 있는 첫 번째 이미지일 것이다.
이와 동시에 대각선 한편에서는 사회비판적 시선이 녹아든 3집을 명예의 전당에 봉헌하고, 그 맞은편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4집을 얘기한다. 이것 참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하나의 작품만으로 서태지의 모든 현상을 집적해 설명해야 한다면 본 2집이 가장 제격일 것이다. 이 앨범은 ‘서태지 신드롬’을 이 땅에 공포한 선언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충격의 음반을 접하고 1년 전의 ‘난 알아요’라는 외침이 단발성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음을 직감했다. 이처럼 6개월 이상의 공백을 우려했던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멋진 임팩트를 선사한 서태지는 자신의 가치를 재입증하며 가요계의 맹주로 우뚝 섰다. 서태지 신화의 진정한 출발을 고하는 방아쇠가 비로소 당겨진 것이었다. 1집을 통해 가요계의 물줄기를 댄스로 돌려놓았던 그가 앨범에서 꺼내든 카드는 ‘록’이었다. 그의 음악적 시원(始原)이 메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울 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TV 출연에서 첫 상연한 ‘하여가’는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획기적인 곡이었다. 격렬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가 1분이나 곡 중간에 첨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전 가요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던 패턴이었다. 이 지점에서 그의 아티스트적 고집이 빛을 발했다. 곡에서 더욱 놀라웠던 것은 국악기인 태평소를 삽입해 우리만의 흥취를 살린 것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국악기의 사용은 메탈 기타의 상승 기운을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 충일한 분위기를 죽이지 않았다. 자연스레 당시 말 만들어내기 좋아했던 사람들은 ‘동과 서의 완벽한 퓨전’ 등의 미사여구를 동원해 곡을 찬양했다. ‘하여가’의 비중이 크긴 했지만 곡들의 탁월성은 다른 곳들에서도 두드러졌다. 언제나 라이브 무대 마지막을 달궜던 ‘우리들만의 추억’, 이후의 테크노 열풍을 예견한 ‘수시아’, 발라드 수작 ‘너에게’, 음산한 기운을 방사한 앨범의 비기(秘技) ‘죽음의 늪’ 등이 그 면면들이었다. 서태지는 이후 얼터너티브 록, 힙합, 하드코어 등으로 마차를 갈아타며 대중들의 예상을 빈번히 뛰어넘었다. 이처럼 그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공간에서 민첩하게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가며 지금도 어디론가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적어도 주류 음악 필드 내에서는 그렇다. 앨범은 그처럼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그의 경력의 단락들이 모순되지 않는 새로운 의미의 흐름 위에 질서 잡혀질 것임을 처음으로 증명한 쾌작이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가요 시장은 이만한 파급력을 지니는 작품을 주조하지 못하고 있다.
·결성 : 1991년 ·구성원 : 서태지(보컬, 랩) 양현석(보컬, 랩) 이주노(보컬, 랩) ·주요활동 -1992년 1집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환상 속의 그대’ LIVE & TECHNO REMIX 라이브 음반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1993년 2집 ‘Seotaiji and Boys Ⅱ: 하여가/우리들만의 추억’ 라이브 음반 ‘93 마지막 축제’ -1994년 3집 ‘SEOTAIJI AND BOYS Ⅲ: 발해를 꿈꾸며/교실이데아’ -1995년 싱글 ‘서태지와 아이들: 필승/GOODBYE’ 라이브 음반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4집 ‘Seotaiji and Boys Ⅳ: 슬픈 아픔/필승/Come Back Home’ -1996년 베스트 음반 ‘Goodbye Best Album’ 공식 해체 싱글 ‘시대유감’ 〈배순탁|웹진 IZM 필자〉 |
서태지와 아이들
- [경향신문] [대중음악 100대 명반]30위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Ⅱ’ 2008.02.19
- [경향신문] [대중음악 100대 명반]24위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2008.02.19
[경향신문] [대중음악 100대 명반]30위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Ⅱ’
2008. 2. 19. 11:47
[경향신문] [대중음악 100대 명반]24위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2008. 2. 19. 11:39
[대중음악 100대 명반]24위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 ||||
입력: 2007년 11월 15일 09:44:34 | ||||
세상의 어떤 앨범은, 그 앨범이 안고 있는 것들만으로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는 숙명에 놓인다.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억울할 일이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앨범을 내놓는 가장 큰 이유는 훈훈하도록 단순한 그저 ‘음악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던가. 아, 하지만 이 뮤지션에게는 이 일반적인 공식이 적용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재능 있는 음악가이자 뛰어난 수완가, 빈틈없는 사업가인 ‘서태지’에게는.
다소 조악한 신시사이저 효과들과 이제 와서 보면 다소 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래핑, 심장을 울리는 베이스 리듬, 작렬하는 기타 사운드. 이 모든 요소가 뒤섞여 있는 단 한 곡의 음악은, 앨범의 인트로 ‘Yo! Taiji!’를 지나 극적으로 등장한다. ‘난 알아요’. 이 한 곡이 만들어 낸 무시무시한 파장은 90년대 가요계의 판도는 물론 젊은이들의 문화 사상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마도 손대면 톡하고 터져버릴 듯한 폭발하는 젊음의 코드가 서로를 유혹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릇한 스무살 뮤지션 서태지의 생기가 숨 쉬는 건 ‘난 알아요’뿐만이 아니다.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환상 속의 그대’나 ‘Rock’N Roll Dance’가 보여주는 힙합과 댄스, 록의 절묘하고 대담한 교배,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나 ‘이 밤이 깊어가지만’의 더없이 팝적인 감수성. 이 모든 요소들에 80년대 신스 팝의 요소까지 담은 숨겨진 명곡 ‘내 모든 것’. 어떤 하나의 음악적 틀로는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 싱싱하다. 매력적이다. 어쩌면 이 앨범은 그동안 탈출구를 찾지 못했던 젊음의 비상구였을지도 모르겠다. 서태지와아이들은 이 앨범 한 장으로 ‘방 한 구석에 앉아 쉽게 세상을 이야기하려’(‘환상 속의 그대’)하던 이들과의 정면 승부를 선언한 셈이다. 그 승부수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끝내 그들은 한 세대의 승자가 되었다. 이 앨범을 이야기할 때 끊임없이 제기되는 표절 논란? 이곳에선 잠시 넣어두자. 서태지와아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난 세대들, 그리고 그들의 놀라운 파워에 위기감을 느꼈던 당시의 기성세대들에게는 이미 열외의 문제 아닌가. 득실이 있겠지만 서태지와아이들의 1집은 ‘음악’만으로 평가되는 음반이 아니다. 앨범 한 장에 이렇게 거창한 수식을 부여해도 부끄럽지 않은 것, 새삼 이 앨범이 대단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결성 : 1991년 ·구성원 : 서태지(보컬, 랩) 양현석(보컬, 랩) 이주노(보컬, 랩) ·주요활동 -92년 1집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환상 속의 그대’ LIVE & TECHNO REMIX 라이브 음반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93년 2집 ‘Seotaiji and Boys Ⅱ: 하여가/우리들만의 추억’ 라이브 음반 ‘93 마지막 축제’ -94년 3집 ‘SEOTAIJI AND BOYS Ⅲ: 발해를 꿈꾸며/교실이데아’ -95년 싱글 ‘서태지와 아이들: 필승/GOODBYE’ 라이브 음반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4집 ‘Seotaiji and Boys Ⅳ: 슬픈 아픔/필승 /Come Back Home’ -96년 베스트 음반 ‘Goodbye Best Album’ 공식 해체 싱글 ‘시대유감’ 〈김윤하|웹진 가슴 편집인〉 |